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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과 관계

썸도 아니고 연애도 아닌 시추에이션십

서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 연애라고 부르기는 애매해요. 연락은 매일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손도 잡고 다니는데 우리 사이가 뭔지는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물어보면 뭔가 깨질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알 수 없는 관계의 상태를 요즘은 시추에이션십이라고 불러요.


시추에이션십이란?

시추에이션십(situationship)은 연인도 친구도 아닌, 그 경계 어딘가에 머무는 관계를 말합니다. 데이트도 하고 감정도 오가지만, 공식적인 정의나 약속이 없는 상태예요. 해외 MZ세대 사이에서 먼저 쓰이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이 단어로 자신의 관계를 설명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썸과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어요. 썸은 대부분 기간이 짧고, 서로가 탐색 중인 단계인데요. 시추에이션십은 그보다 더 긴 시간, 더 깊은 감정이 오고 가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뭔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만남의 빈도나 친밀도만 보면 연인과 다를 바가 없는데, 한쪽 혹은 양쪽 모두 관계에 이름 붙이기를 피합니다.

왜 이런 관계가 만들어지는 걸까

시추에이션십이 생기는 데는 몇 가지 심리적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첫 번째는 거절에 대한 공포입니다. 관계를 정의하는 순간 거절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겨요. 이름 없는 상태를 유지하면 '공식적인 실패'를 피할 수 있거든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불확실성 회피와 연결하는데, 모호한 상태가 오히려 심리적 안전감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회피 애착 유형의 영향입니다.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관계가 너무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추에이션십은 이 유형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완충 구조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회피형 애착 유형을 자세히 다룬 지난 포스팅이 있으니 참고해 보세요.

 

회피형 애착 특징 총정리, 관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

회피형 애착, 심리학에 관심 없는 분들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좋아하면서도 밀어내고, 가까워지면 오히려 거리를 두고, 감정 표현을 잘 안 하고 못하는 사람. 회피형 애착은 단순

hararoad.com

 

세 번째는 선택지 과부하입니다. 어장관리라고도 하는 바로 그 상황인데요. SNS와 데이팅 앱이 일상화되면서 선택지가 많아진 것도 영향을 줍니다. 관계를 확정하면 다른 가능성이 닫혀버리고, 다른 사람을 편하게 탐색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이 사람이 진짜 최선인지 확신하기 전에 결정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시추에이션십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이 관계가 나를 조금씩 소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지금 자신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상태가 진짜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는 것인지 말입니다.

연구들에 따르면 관계의 모호함이 장기화될수록 자존감과 정서적 안정감이 함께 낮아집니다. 가장 많이 소진되는 쪽은 대부분 관계를 정의하고 싶어 하는 쪽입니다. 먼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확실하게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연인 관계인지, 아니면 지금 상태만으로도 충분한지 파악하는 것부터입니다.

다음으로, 상대에게 이야기를 꺼내야 해요. 추궁하거나 답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이야기하고 싶어"처럼 열린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반응 자체가 대답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대화를 회피하거나 "굳이 정해야 해?"와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면, 그게 이 관계에 대한 상대의 입장입니다. 말이 없어도 행동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썸도 연애도 아닌 시추에이션십
썸도 아니고 연애도 아닌 시추에이션십

시추에이션십은 잘못된 관계도, 부끄러운 관계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그 모호함 속에서 계속 소진되고 있다면, 더 명확한 것을 요구할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이름 없는 관계에 맞춰 스스로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합니다.